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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앨리샤 키스(Alicia Keys)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라는 말에 '그냥 히트곡 모음집 아닐까' 하고 반쯤 시큰둥하게 들어갔는데, 극장 문을 열자마자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한국 초연 첫 공연을 직접 본 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브로드웨이가 선택한 음악성 — 네오 소울과 R&B가 대극장을 채우다
헬스키친(Hell's Kitchen)은 팝스타의 히트곡을 무대에 늘어놓는 방식, 이른바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서 꽤 다른 선택을 합니다. 여기서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특정 아티스트의 기존 히트곡들을 극의 플롯에 맞게 재배열하여 서사를 끌어가는 형식을 말합니다. 아바(ABBA)의 노래로 만든 맘마미아나 빌리 조엘의 곡으로 구성된 무빙 아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헬스키친이 이 장르의 함정을 피한 이유는 음악 자체의 결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객석에 앉는 순간 들려오는 사운드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형적인 벨팅(Belting) 창법과는 전혀 다른 온도였습니다. 벨팅이란 가슴 성구를 높은 음역까지 힘있게 끌어올려 강렬하고 두꺼운 소리를 내는 뮤지컬 발성 기법으로, 대극장을 가득 채우는 파워풀한 사운드가 특징입니다. 그런데 주인공 알리는 그 대신 네오 소울(Neo-Soul)과 정통 R&B 창법으로 노래를 토해냈습니다.
네오 소울이란 1990년대 중반에 태동한 장르로, 클래식 소울 음악에 R&B, 힙합, 재즈의 질감을 더한 것입니다. 에리카 바두, 디안젤로 같은 아티스트들이 대표적이며,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감성과 허스키한 보이스가 핵심입니다. 알리샤 키스의 음악이 본래 그 계보 위에 있기에, 무대 위의 알리가 'Fallin''을 소울 가득한 허스키 보이스로 내리꽂을 때 그 소리는 뮤지컬 넘버가 아니라 진짜 음악처럼 들렸습니다.
앙상블의 스트리트 댄스도 그랬습니다. 무대 바닥을 발로 구르며 몸 전체로 리듬을 만드는 스트릿 힙합 안무는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올라오는 브라스 밴드의 날카로운 사운드와 맞물려 뉴욕 헬스키친 거리의 열기를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공연 내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도 땀이 났으니까요.
헬스키친의 음악 라인업 — 직접 들어본 곡들
제가 이날 공연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곡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앨리샤 키스의 디스코그래피가 워낙 두텁다 보니 노래 자체의 완성도가 워낙 높아서, 스토리와 결합했을 때 시너지가 대단했습니다.
- Fallin' — 어머니와의 갈등 장면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핵심 넘버. 소름이 돋았습니다.
- If I Ain't Got You — 첫사랑의 감정을 담아 부르는 장면에서 객석이 조용해졌습니다.
- The River — 극의 서사적 전환점에서 흐르는 곡으로, 감정의 무게가 달랐습니다.
- Kaleidoscope — 화려하지 않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곡이었습니다.
- Empire State of Mind (New York 파트) — 뮤지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뜨거웠던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성장 서사의 힘과 한계 — 한국 초연 현장에서 느낀 것
헬스키친의 서사는 1990년대 맨해튼 헬스키친 지구를 배경으로 17세 소녀 알리가 피아노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극의 두 축은 어머니와의 세대 갈등, 그리고 흑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입니다. 이 두 요소가 뉴욕이라는 도시의 날 것 에너지와 맞물리면서 현대 주크박스 뮤지컬의 새로운 문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출처: The Broadway League).
제가 직접 한국 초연 첫 공연을 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건 세트였습니다. 브루클린 스타일의 철골 계단 구조물이 무대를 꽉 채우고 있었는데, 그 앞에 앉는 순간 '뉴욕에 와 있구나'라는 느낌이 즉각적으로 왔습니다. 그 공간에서 알리가 어머니와 충돌하고, 피아노 건반을 거칠게 내리치는 장면은 10대의 갈증이 얼마나 진하게 전달되는지를 실감하게 했습니다.
다만 서사 자체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모녀 갈등과 첫사랑의 좌절이라는 플롯의 뼈대가 성장 드라마의 클리셰(Cliché)를 상당 부분 따라가고 있습니다. 클리셰란 너무 많이 반복되어 신선함을 잃은 표현이나 설정을 가리키는 말로, 이 작품에서는 '억압하는 부모 VS 자유를 갈망하는 10대'라는 구도가 그에 해당합니다. 전개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은 저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제 인생 뮤지컬 목록에 올라간 이유는, 그 예측 가능한 이야기를 음악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헬스키친이라는 실존 공간의 맥락 위에 앨리샤 키스의 곡들이 유기적으로 얹히는 방식은, 단순히 히트곡을 나열하는 것과 결이 전혀 달랐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2024년 토니상(Tony Award)에서 최우수 뮤지컬 부문을 포함해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그 성취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출처: Tony Awards 공식 사이트).
그때 느낀 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음악이 얼마나 강력한 서사 도구가 될 수 있는지였습니다. 서사가 클리셰를 답습할 때조차도 음악이 살아있으면 관객은 그 안에서 진짜 감정을 경험한다는 것, 헬스키친이 그걸 증명해 보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헬스키친 뮤지컬은 앨리샤 키스를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사전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Fallin''이나 'If I Ain't Got You' 같은 곡을 미리 들어두면 극 중 감정선이 훨씬 깊게 느껴집니다. 공연 전 주요 곡 몇 개를 들어두는 걸 권합니다.
Q.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원래 평이 좋지 않나요?
A. 맞습니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히트곡을 억지로 스토리에 끼워 넣는다"는 비판을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헬스키친은 앨리샤 키스의 실제 성장 배경인 뉴욕 헬스키친 지구를 공간적 토대로 삼았기 때문에 음악과 서사가 억지스럽지 않았습니다. 그게 이 작품이 장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을 받는 핵심 이유입니다.
Q. 한국 초연 공연의 완성도는 어땠나요?
A. 제가 직접 첫 공연을 봤는데, 브루클린 스타일 철골 세트와 브라스 밴드 사운드의 현장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앙상블의 스트릿 댄스 에너지가 객석까지 전달되는 수준이었고, 주인공의 소울 보컬 완성도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Q. 뮤지컬 헬스키친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무엇인가요?
A. 앨리샤 키스의 대표곡인 'Fallin''이 극의 감정적 정점을 담당하는 핵심 넘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Empire State of Mind' 파트가 극장 전체 분위기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순간이었다고 느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헬스키친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서사의 전형성이라는 약점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네오 소울과 R&B가 뉴욕이라는 실존 공간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음악적 성취는 그 약점을 충분히 상쇄합니다.
제가 한국 초연 첫 공연을 보고 나온 뒤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건, 이 뮤지컬은 보고 나서 앨리샤 키스의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듣고 싶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음악을 단순히 소비하는 게 아니라, 그 노래가 태어난 공간과 감정의 맥락을 이해하고 나면 같은 곡이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공연 관람 전후로 앨리샤 키스의 디스코그래피를 들어보시면 그 차이가 느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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