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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숨을 멈추게 되는 뮤지컬이 있을까요? 저는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데스타운을 한국, 웨스트엔드에서 각각 관람하면서, 회전 무대 하나가 비극적 운명을 이토록 정교하게 시각화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포크·재즈 음악 위에 고대 신화와 현대 자본주의 서사를 얹은 이 작품, 일반적으로 '대사 중심 뮤지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뮤지컬 넘버가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구조입니다.
무대 메커니즘: 회전 무대가 만들어낸 '의심의 시각화'
비극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우의 표정입니다. 그런데 하데스타운은 그 반대를 택했습니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이끌고 지하 세계를 빠져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 바닥의 턴테이블(Turntable)이 역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턴테이블이란 무대 바닥 일부가 독립적으로 회전하는 장치로, 공간 이동이나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표현할 때 쓰이는 무대 메커니즘(Stage Mechanism)입니다.
제가 직접 객석에서 지켜봤는데, 오르페우스는 분명히 앞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발은 계속 움직이는데 그는 전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무대 바닥이 걸음과 정반대 방향으로 밀려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각적 저항감이 객석에 앉아 있는 저에게까지 고스란히 전이되어, '뒤에 정말 따라오고 있는 걸까?'라는 오르페우스의 의심이 제 가슴속에서도 똑같이 자라났습니다.
이 연출에는 승강 리프트(Elevator Lift) 장치도 함께 사용됩니다. 승강 리프트란 무대 중앙 바닥이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기계 장치로, 하데스타운에서는 지상과 지하 세계를 전환하는 핵심 장치로 활용됩니다. 공연 초반 에우리디케가 처음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이 리프트가 작동하는 순간, 좌석에서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습니다. 빈티지한 재즈 클럽 세트 디자인과 라이브 밴드의 트롬본 소리가 이 기계적 장치와 맞물리면서, '지하'라는 공간이 단순한 세트가 아닌 진짜 다른 차원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턴테이블(Turntable): 역방향 회전으로 오르페우스의 의심과 불안을 물리적으로 재현
- 승강 리프트(Elevator Lift): 무대 중앙 바닥의 수직 이동으로 지상↔지하 세계 전환
- 라이브 밴드 배치: 무대 위 빈티지 재즈 클럽 세트 안에 직접 편성, 공간감 강화
- 조명 연출: 지하 하데스타운의 공장 서사를 어두운 산업적 색감으로 뒷받침
실제로 브로드웨이 측 공식 자료에 따르면, 하데스타운은 2019년 토니상(Tony Award) 시상식에서 최우수 뮤지컬을 포함해 8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출처: Tony Awards 공식 홈페이지). 무대 메커니즘을 통한 연출력이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작품의 주제 의식 자체를 구현했다는 업계의 평가가 그 결과로 나타난 셈입니다.
뮤지컬 넘버 중심 구조: 한국·웨스트엔드 비교 관람기
일반적으로 뮤지컬은 '대사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노래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구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하데스타운은 이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전체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뮤지컬 넘버(Musical Number)가 채웁니다. 뮤지컬 넘버란 극의 서사와 감정을 노래 형식으로 전달하는 장면 단위를 뜻하며, 이 작품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는 구간이 길게 이어질 정도로 넘버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저는 한국 프로덕션과 웨스트엔드(West End) 프로덕션을 모두 봤는데, 같은 스크립트와 동일한 스코어(Score)임에도 공연장 분위기가 전혀 달랐습니다. 여기서 스코어란 뮤지컬의 악보 전체, 즉 가사와 음악을 포함한 작품의 음악적 골격을 말합니다. 한국 프로덕션은 배우들의 발성이 좀 더 또렷하고 극적인 감정선이 강조된 느낌이었다면, 웨스트엔드는 재즈 특유의 루즈한 템포와 즉흥적인 분위기가 훨씬 강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같은 노래인데도 '다른 노래처럼 들리는' 경험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신화적 상징성과 은유가 빽빽하게 들어찬 포크송 가사들이 극 전체를 이끌어가다 보니, 중반부 하데스의 공장 서사가 다소 몽환적으로 흘러가는 구간이 있습니다. 빠른 전개와 명확한 기승전결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이 지점이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제가 두 번 보고 나서야 솔직히 인정하게 된 부분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그리스 신화나 신들의 관계를 몰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음악 자체가 서사를 친절하게 안고 갑니다. 실제로 웨스트엔드에서는 제 옆에 앉은 관객이 공연 내내 미세하게 몸을 흔들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음악이 무엇을 하는지 충분히 설명됩니다.
하데스타운의 원작 음악은 아나이스 미첼(Anaïs Mitchell)이 2010년 처음 발표한 컨셉 앨범에서 출발했으며, 이후 오프-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거쳐 2019년 브로드웨이 정식 무대에 올랐습니다(출처: WhatsOnStage). 10년에 걸쳐 다듬어진 음악적 밀도가, 제가 두 나라에서 관람하며 느낀 그 풍부함의 이유였을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그리스 신화를 전혀 몰라도 하데스타운 이해가 되나요?
A. 제 경험상 전혀 문제없습니다.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하데스, 페르세포네라는 네 인물의 관계만 어렴풋이 알아도 극을 따라가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신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결말을 처음 맞이하는 편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예습보다는 뮤지컬 넘버를 미리 한두 곡 들어보고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Q. 한국 공연이랑 웨스트엔드 공연이 많이 다른가요?
A. 스토리와 스코어는 동일하지만 공연장 특성과 배우 해석에 따라 분위기가 꽤 달라집니다. 제가 직접 둘 다 봤는데, 웨스트엔드 쪽은 재즈 특유의 루즈한 즉흥성이 강하게 살아 있었고, 한국 프로덕션은 배우들의 감정선이 더 명확하게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같은 작품인데 두 번 다 돈이 아깝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 차이입니다.
Q. 뮤지컬을 처음 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나요?
A. 입문작으로는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빠른 스토리 전개나 명확한 기승전결보다는 음악과 분위기로 끌고 가는 작품이라, 뮤지컬 넘버 자체를 즐기는 취향이라면 굉장히 잘 맞습니다. 반면 극적인 대사 장면이나 화려한 안무를 기대하고 간다면 중반부에서 다소 지루함을 느낄 가능성이 있습니다.
Q. 하데스타운에서 회전 무대는 어떤 장면에 나오나요?
A. 클라이맥스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귀환 장면에서 가장 극적으로 사용됩니다. 배우가 앞으로 걸어가는데 무대 바닥이 역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전혀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 한 장면이 오르페우스의 심리적 의심을 시각적으로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하데스타운은 연출의 승리입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신화를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 착취 구조와 결합하고, 그 위에 포크·재즈 뮤지컬 넘버를 올린 구성은 단순한 각색이 아닙니다. 특히 턴테이블 역회전이라는 무대 메커니즘 하나로 인간의 의심과 나약함을 시각화한 방식은, 제가 두 나라에서 봤음에도 매번 같은 장면에서 숨을 참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뮤지컬 넘버 중심의 구조적 특성상, 빠른 전개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중반부가 진입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상 가장 좋은 관람 준비는 사전 예습보다는 OST를 미리 두세 곡 귀에 익혀두는 것입니다. 귀가 익숙해진 상태에서 그 노래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순간, 그 감동의 폭은 확실히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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