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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퀸이 주인공인 뮤지컬이 보수적인 제화 공장을 배경으로 한다면, 과연 유쾌할 수 있을까요? 저는 반신반의하며 처음 킹키부츠 객석에 앉았다가, 롤라가 새빨간 부츠를 신고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그 의심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한국에서 4번, 영국에서 1번, 총 5번을 봤습니다. 그리고 매번 같은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Land of Lola — 무대 연출이 만드는 전복의 순간
뮤지컬을 처음 접하는 분들 중에는 "드랙퀸 소재라면 불편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킹키부츠의 핵심은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를 극장 공간 안에서 얼마나 유쾌하고 물리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하느냐에 있습니다.
넘버 'Land of Lola'가 시작되는 순간, 무대 바닥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컨베이어 벨트란 원래 공장 자동화 라인에서 물건을 이송하는 장치인데, 이 뮤지컬에서는 낡고 칙칙한 제화 공장이라는 공간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그 위에서 펼쳐지는 드랙 퍼포먼스와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놀란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산업적 공간 위에서 댄서들이 흔들림 없이 고난도 안무를 소화해 내는데, 그 아이러니가 만드는 쾌감이 상당했습니다.
엔젤스(Angels)라고 불리는 앙상블 드랙 댄서들의 군무는 이 장면을 완성하는 또 다른 축입니다. 엔젤스란 롤라와 함께 무대를 채우는 드랙퀸 댄서 그룹으로, 킹키부츠 특유의 화려한 색채를 책임지는 핵심 요소입니다. 신디 로퍼(Cyndi Lauper)가 작곡한 팝-록(Pop-Rock) 넘버 특유의 쿵쾅거리는 비트 위에, 조명이 동시에 터지며 객석 전체가 록 콘서트장처럼 들썩이던 그 순간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팝-록이란 팝 음악의 대중성과 록 음악의 에너지감을 결합한 장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디 로퍼가 이 장르를 선택함으로써 소수자 포용이라는 무거운 메시지를 거부감 없이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킹키부츠는 2013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토니상(Tony Award) 6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출처: The Tony Awards). 음악상을 포함한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는 사실은, 신디 로퍼의 음악적 선택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예술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방증입니다.
- 컨베이어 벨트: 공장이라는 공간성과 드랙 퍼포먼스의 대비를 물리적으로 구현
- 엔젤스의 군무: 화려한 시각 언어로 '롤라의 세계'를 객석에 직접 이식
- 팝-록 넘버: 묵직한 주제를 대중이 쉽게 체감하도록 만드는 음악적 장치
- 신디 로퍼의 작곡: 토니상 음악상 수상으로 예술성 공인
넘버 분석 — 화려함 뒤에 숨겨진 상처, 그리고 도식성의 한계
킹키부츠는 단순히 화려한 쇼 뮤지컬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게 절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진짜 힘은 두 주인공이 공유하는 상처의 구조에서 나옵니다.
찰리와 롤라는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둘 다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동일한 내상(內傷)을 안고 있습니다. 내상이란 외부로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심리적 상처를 뜻합니다. 1막 후반 'Not My Father's Son'은 이 내상이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는 넘버인데, 저는 이 장면에서 매번 예상보다 훨씬 크게 흔들립니다. 화려한 쇼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두 사람이 무대 위에서 조용히 서로의 아픔을 꺼내 놓는 그 온도 차이가, 역설적으로 감정을 더 깊이 파고듭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Soul of Life'입니다. 찰리 솔로 넘버인데, 처절하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화려한 앙상블 없이 한 사람의 내면이 통째로 드러나는 구성이라, 보고 나면 이상하게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Land of Lola'가 킹키부츠의 얼굴이라면, 'Soul of Life'는 킹키부츠의 심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후반부 구조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밀라노 패션쇼를 앞두고 찰리가 공장 직원들과 롤라에게 감정을 폭발시키는 갈등 장면은, 위기를 인위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캐릭터의 성격을 일시적으로 극단화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른바 브로드웨이식 해피엔딩의 도식성, 즉 갈등을 급격히 증폭시킨 뒤 마지막 넘버 한 곡으로 모든 것을 봉합해 버리는 플롯 구조가 여기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도식성이란 상황의 전개가 예측 가능한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성질을 의미합니다. 'Raise You Up'은 감동적인 피날레임에 분명하지만, 직전 갈등 해소 과정이 좀 더 촘촘했다면 그 감동이 훨씬 두터워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킹키부츠가 소수자 서사를 이렇게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사례는 드뭅니다. 영국 웨스트엔드(West End) 공식 자료에 따르면, 킹키부츠는 2012년 런던 초연 이후 장기 흥행에 성공하며 전 세계 20개국 이상에서 공연되었습니다(출처: Official London Theatre). 제가 영국에서 직접 본 공연과 한국 공연을 비교했을 때, 두 나라 모두 'Land of Lola'의 객석 반응은 거의 동일했습니다. 문화권이 달라도 이 장면이 주는 물리적 흥분은 보편적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킹키부츠, 뮤지컬 처음 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나요?
A. 처음 보는 분께 오히려 더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팝-록 넘버 중심이라 음악이 귀에 쉽게 들어오고, 스토리도 단순명쾌합니다. 뮤지컬이 낯설다고 느끼는 분들도 'Land of Lola' 장면에서는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처음 지인을 데려갔을 때도 그 장면 이후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Q. 컨베이어 벨트 위 댄스가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 건가요?
A. 움직이는 벨트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고난도 안무를 소화하는 것은 일반 무대보다 체감 난이도가 훨씬 높습니다. 댄서들이 흔들림 없이 동작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감탄했는데, 실제로 제화 공장이라는 설정 자체를 무대 장치로 녹여낸 연출이라 공연 내내 그 디테일이 살아있습니다.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극의 서사와 연결된 장치입니다.
Q. 킹키부츠에서 가장 감동적인 넘버는 뭔가요?
A.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Land of Lola'를 꼽는 분이 가장 많고, 저는 'Soul of Life'와 'Not My Father's Son'을 함께 봐야 이 작품의 감정선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장면만 기대하고 갔다가 'Not My Father's Son'에서 예상 밖으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Q. 한국 공연이랑 영국 공연이랑 많이 다른가요?
A. 연출의 큰 틀은 동일합니다. 다만 영국 공연은 롤라 캐릭터 특유의 위트와 무게감이 좀 더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룬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공연도 충분히 완성도가 높았지만, 언어와 문화적 맥락이 다를 때 전달되는 뉘앙스 차이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두 버전 모두 'Land of Lola'의 객석 반응은 거의 똑같이 뜨거웠습니다.
결론
킹키부츠는 한 번쯤 꼭 봐야 하는 뮤지컬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자 포용이라는 주제를 무겁게 들이밀지 않고, 팝-록 비트와 화려한 무대 위에 얹어서 객석이 자연스럽게 흡수하도록 만드는 방식이 탁월합니다. 후반부 갈등 구조의 작위성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 한계를 알고 봐도 'Land of Lola'가 터지는 순간의 에너지는 매번 다르게 다가옵니다.
다섯 번을 봤는데도 여전히 기회가 생기면 또 볼 의향이 있습니다. 처음 보신다면 넘버 한 곡 한 곡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면서, 찰리와 롤라가 어떤 지점에서 연결되는지 주목해 보시길 권합니다. 화려함 뒤에 있는 상처가 보이기 시작하면, 이 뮤지컬이 왜 전 세계에서 오래 사랑받는지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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