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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객석이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무대 조명이 한 줄기 은빛으로 좁아지고, 배우의 목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울 때입니다. 저는 뮤지컬 〈시라노〉의 발코니 씬에서 정확히 그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을 원작으로, 프랭크 와일드혼이 음악을 붙인 이 작품은 '언어로 사랑하는 남자'의 비극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옮겨 놓습니다.

 

뮤지컬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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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 씬, 조명 한 줄기가 만든 낭만주의의 정수

혹시 이런 기억이 있으신지요. 공연장에서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당황했던 순간 말입니다. 저는 그날 발코니 씬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상황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시라노〉의 발코니 씬은 낭만주의(Romanticism)의 핵심을 무대언어로 번역한 장면입니다. 여기서 낭만주의란 18~19세기 유럽 문학·예술에서 이성보다 감성과 개인의 내면을 중시했던 사조로, 숭고한 감정과 이상을 향한 동경이 그 본질입니다. 시라노는 자신의 추한 외모를 어둠 속에 숨기고, 오직 목소리와 시어(詩語)만으로 록산에게 영혼의 사랑을 토해냈습니다. 화려한 특수효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봤더니, 바로 그 단순함이 훨씬 더 강렬했습니다.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결국 눈가를 닦았습니다. 언어가 이렇게 사람의 심장을 직접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이 장면에서 시적 언어의 서정성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그중 저에게 특히 강렬하게 남은 넘버는 「거인을 데려와」와 「Alone」이었습니다. 「거인을 데려와」는 시라노의 고독과 자의식이 응축된 곡으로, 선율보다 가사의 무게가 먼저 가슴에 닿습니다. 「Alone」은 제목 그대로 혼자라는 감각을 음악적으로 구현한 넘버인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렇게 간결한 멜로디가 그렇게 깊은 자리까지 파고들 줄은 몰랐거든요.

또한 「록산」이라는 넘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라노가 연적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했던 이 노래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없는 남자의 처연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한국어 노랫말이 와일드혼의 선율과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는, 번역이 아닌 창작처럼 느껴질 만큼 자연스러웠습니다.

뮤지컬 비평 분야에서는 이처럼 원작 희곡의 문학적 품격을 음악극(Music Drama)으로 구현하는 것을 두고 '극적 완결성'의 지표로 봅니다. 음악극이란 단순히 노래가 있는 연극이 아니라, 음악과 드라마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서로를 증폭시키는 형식을 말합니다. 이 기준에서 〈시라노〉는 상당히 높은 완성도에 도달해 있다고 봅니다(출처: 한국공연예술센터).

  • 「거인을 데려와」 — 시라노의 자의식과 고독이 응축된 핵심 넘버
  • 「Alone」 — 간결한 멜로디 속 고립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
  • 「곧 가스콘 용병대」 — 검객 시라노의 호방한 기사도 정신을 집약한 앙상블 넘버
  • 「록산」 —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는 남자의 처연한 사랑 노래
요약: 발코니 씬의 힘은 특수효과가 아닌 언어와 음악의 결합, 즉 낭만주의적 서정성에서 나오며 와일드혼의 넘버들이 그 감정을 정확히 증폭시킵니다.

 

순애보의 숭고함, 그리고 현대 관객이 느끼는 답답함

혹시 공연을 보면서 "왜 말하지 않는 거야"라고 속으로 외쳐본 적 있으신지요. 저는 〈시라노〉를 보는 내내 그 감정과 씨름했습니다. 그것이 이 작품이 2시간 넘게 관객을 붙들어 놓는 힘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수도원 장면에서 가을 낙엽이 무대 위로 떨어지던 순간, 저는 제 경험상 그 장면만큼 숭고함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드는 연극적 순간을 좀처럼 본 적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나의 깃털(Panache)"을 외치는 시라노의 눈빛은, 자존심과 신념을 끝내 굽히지 않겠다는 기사도 정신(Chivalry)의 극단적 표현입니다. 기사도 정신이란 중세 유럽의 기사 계층이 따르던 행동 규범으로, 명예·용기·충성과 함께 연인을 향한 고귀한 헌신을 핵심 덕목으로 삼습니다. 시라노는 그 덕목을 21세기 무대 위에서 문자 그대로 실천하다 죽습니다.

그런데 제 솔직한 생각은 조금 복잡합니다. 시라노의 희생과 자존심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 연애의 시각에서 보면 그 고집이 록산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통제는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도 남습니다. 록산은 두 남자의 시적 언어에 매료된 채 자신이 정작 누구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수십 년을 보냅니다. 주체적인 여성 서사로서는 다소 평면적이라는 시대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그 한계를 덮어버린 것은 배우들의 힘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작품은 무대 장치가 많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주연과 조연, 앙상블 배우들이 그 빈 공간을 에너지로 가득 채웁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저는 오히려 그 여백이 작품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의 몸과 목소리 외에 아무것도 없을 때, 관객은 딴 곳에 눈길을 뺏기지 않고 오로지 그 사람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에드몽 로스탕의 원작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1897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희곡으로 꼽힙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온 이유는,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는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출처: Comédie-Française 공식 아카이브).

요약: 시라노의 순애보는 숭고하지만 현대 관객에게는 답답함도 주며, 그 긴장감 자체가 작품의 매력이자 한계로 공존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뮤지컬 시라노, 원작 희곡을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저는 원작을 전혀 읽지 않고 공연장에 갔습니다. 그런데도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뮤지컬 자체가 상황과 감정을 음악으로 충분히 설명해주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모르고 가면 반전의 감동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Q. 발코니 씬이 제일 유명한 장면인가요?

A. 발코니 씬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수도원 장면의 감정적 밀도가 훨씬 높다고 느꼈습니다. 발코니 씬이 낭만의 절정이라면, 수도원 장면은 그 모든 감정의 파국이자 정산입니다. 두 장면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Q. 뮤지컬 시라노에서 가장 인상적인 넘버는 뭔가요?

A. 저는 「거인을 데려와」와 「Alone」을 꼽겠습니다. 두 넘버 모두 시라노의 내면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곧 가스콘 용병대」는 앙상블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장면으로, 극장 분위기 자체가 달라집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조용한 넘버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Q. 록산 캐릭터가 수동적이라는 평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솔직히 저도 공연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록산은 두 남자의 언어에 반응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19세기 원작 희곡의 시대적 한계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배우가 그 안에서 얼마나 생동감을 만들어내는지 집중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결론

〈시라노〉는 화려한 무대가 없어도 공연이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저는 극장을 나오면서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언어로 사랑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무대 위의 시라노가 생생하게 증명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한계나 캐릭터의 답답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마저 포함해서, 이 작품은 관객에게 언어의 낭만과 자존심이라는 오래된 화두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듭니다. 뮤지컬을 자주 보지 않더라도, 〈시라노〉는 한 번쯤 직접 극장에서 경험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youtu.be/FSR1phrPNdk?si=2IpbPAi2lTpQwEn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