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단군신화를 비튼 코미디라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웃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그 기대는 극장 문을 나서기도 전에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박성광 감독의 연출 데뷔작 〈웅남이〉, 신화적 상상력이 얼마나 안일하게 소비될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보여준 영화입니다. 클리셰, 곰탕처럼 우려먹은 설정의 피로감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웅녀. 〈웅남이〉는 이 단군신화의 원형 서사를 비틀어, 쌍둥이 곰 형제가 인간 세상에 떨어진다는 설정으로 출발합니다. 처음 이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 저는 꽤 기대가 컸습니다. 신화적 상상력을 현대 코미디와 접합한다는 방향성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니까요.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 기시감이 밀려왔습니다. 클리셰(c..
영화관을 나오면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적이 있으셨습니까? 저는 〈리멤버〉를 보고 나서 그랬습니다.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은 80대 노인이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60년간 품어온 복수를 끝내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입니다. 역사적 상흔과 개인의 한이 이렇게 정면으로 충돌하는 영화는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역사적 배경 — 이 복수극은 왜 지금 나왔을까극장에서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노인이 주인공인 복수 스릴러라는 설정 자체가 흔치 않은 데다, 그 배경이 일제강점기의 친일파 처단이라는 점이 제 시선을 단번에 붙잡았습니다.영화의 뼈대는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출발합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식민 지배의 상흔은 단순히 교과서 속 연도로 끝나지 ..
이미 촬영이 끝난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겠다는 감독, 이게 가능한 얘기일까요? 영화 〈거미집〉은 197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그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스크린에서 풍겨 나오는 고풍스러운 레트로 감성과 창작자들의 기묘한 열기에 단번에 사로잡혔습니다. 1970년대 충무로와 레트로 감성 — 이 시대를 굳이 골랐을까요?〈거미집〉의 배경은 사전 검열 제도가 영화 산업을 옥죄던 1970년대 충무로입니다. 사전 검열이란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 전 국가 기관이 대본과 완성본을 미리 심사해 상영 허가를 내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감독이 아무리 좋은 결말을 구상해도 검열관의 도장 한 방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 억압적인 구조가 영화의 모든 ..
출소자가 주인공인 영화, 보통은 화려한 복수극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호자〉의 수혁이 원하는 건 복수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1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사람이 바라는 게 고작 그것인데도,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 설정 하나가 저를 영화관 의자에 붙잡아 두었습니다. 누아르 장르의 공식, 〈보호자〉는 얼마나 지켰나누아르(Noir)란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으로, 영화 장르로서는 도덕적 모호성, 폭력, 운명적 비극을 핵심 문법으로 삼는 장르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하고, 주인공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두운 운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보호자〉는 이 정의에 꽤 충실합니다.수혁은 10년의 복역을 끝내고 출소합니다. 그러나 그를 가만히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마동석 배우가 또 비슷한 걸 찍었겠거니 하고 크게 기대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첫 시퀀스가 시작되고 5분도 채 안 돼서 그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대지진으로 공권력과 법이 완전히 붕괴된 서울을 배경으로, 사냥꾼들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하드액션 블록버스터 〈황야〉, 제가 직접 봐본 뒤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하드액션: 눈을 뗄 수 없었던 타격감의 정체〈황야〉의 액션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이 바로 하드액션(Hard Action)입니다. 하드액션이란 CG나 와이어 의존을 최소화하고, 배우와 스턴트 팀이 실제 몸으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날것의 충격감을 살린 액션 연출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봐봤는데, 이 영화는 그 정의에 꽤 충실했습니다.맨손 ..
넷플릭스에서 무심코 틀었다가 첫 장면부터 자리를 못 뜬 영화가 있었습니다. 조명도 없는 회색빛 벨기에 거리,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이국땅에 내던져진 탈북민 기완의 눈빛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이건 그냥 흘려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로기완〉은 탈북민의 벨기에 망명 정착기라는 무겁고 낯선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제가 관람 후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이 영화는 과연 무엇을 하려 했던 걸까?" 생존 서사 — 회색빛 벨기에에서 버텨낸다는 것주말 저녁,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를 켜고 고른 영화가 이렇게 마음 깊숙이 파고들 줄은 몰랐습니다. 기완이 벨기에에 도착해 난민 신청(Asylum Seeking) 절차를 밟는 장면부터 이미 숨이 막혔습니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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