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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거제도를 배경으로 한 청춘 음악 영화 〈빅토리〉, 혜리와 박세완이 뭉친 '밀레니엄 걸즈'의 이야기입니다. 90년대 사운드트랙과 치어리딩이라는 조합이 꽤 설레는 기대를 안겨줬지만, 저는 스크린 앞에서 예상과는 다른 감정을 먼저 마주했습니다. 과연 이 영화는 세기말 청춘의 결을 제대로 담아냈을까요?

90년대 향수팔이, 어디까지가 진짜 복고인가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마음이 먼저 달려갔습니다. 저도 세기말의 공기를 조금은 기억하는 세대인지라, '그 시절 감성'이라는 말 한마디에 극장 티켓을 끊은 건데요.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첫 질문은 이겁니다. 과연 이 영화가 90년대를 '살았던' 시선으로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90년대를 '소비하는' 시선으로 만들어졌는가.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후자에 훨씬 가깝다는 점이었습니다. 스크린 안의 거제도는 지나치게 깔끔하고 정돈돼 있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교복이 등장하고, 빛바랜 색감 필터가 깔리는데, 그게 전부였습니다. 복고 미학(Retro Aesthetics)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여기서 복고 미학이란 단순히 과거의 외형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서적 질감까지 살려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전자만 건드리고 후자는 흘려보낸 셈입니다.
90년대를 겪어본 세대에게는 너무 가벼운 향수팔이로, 요즘 세대에게는 공감하기 힘든 작위적 복고풍으로 소비될 수밖에 없는 어중간한 경계선, 저는 이 영화가 그 선 위에 정확히 놓여 있다고 느꼈습니다. 문화비평가들이 종종 언급하는 '노스탤지어 마케팅(Nostalgia Marketing)'의 함정, 즉 감정은 자극하되 실체는 없는 방식과 꽤 닮아 있었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 90년대 음악·의상·색감 필터 등 외형적 복고 요소는 충실히 재현
- 그러나 세기말 특유의 사회적 긴장감과 정서적 질감은 거의 부재
- 향수를 자극하는 도구적 소품으로만 활용된 시대 배경
서사구조의 빈틈, 열정은 있는데 이야기가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지점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서사구조(Narrative Structure)를 고르겠습니다. 서사구조란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쌓이고 절정에 이르는가의 뼈대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뼈대가 흔들리면 아무리 배우가 잘 연기해도 관객의 감정이 제대로 쌓이지 않습니다.
오직 춤추고 싶다는 고등학생들의 열정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열정이 어떤 저항을 만나고, 어떤 내면의 균열을 겪고, 결국 어떻게 봉합되는지의 과정이 너무 매끄럽게 처리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건 덜컹거리는 청춘의 마찰음이었는데, 영화는 그 모서리를 전부 둥글게 갈아버렸습니다.
캐릭터 간의 갈등은 생겨나자마자 해소되고, 주인공이 직면해야 할 구조적 벽은 등장하기 무섭게 낭만적으로 희석됩니다. 드라마투르기(Dramaturgy), 즉 극적 긴장감을 설계하는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압력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채 결말을 맞이합니다. 마치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이 덜 들어간 채로 달리는 느낌이랄까요. 앞으로 나아가긴 하는데, 속도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청춘영화가 외면한 세기말의 맨얼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99년은 단순히 '추억의 연도'가 아닙니다. IMF 외환위기(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시기였고, 특히 지방 소도시일수록 그 상흔이 가정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부모 세대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바로 그 시절의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청춘영화가 진짜 힘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 시대의 구조적 불안을 인물 안에 얼마간이라도 심어야 합니다. 〈빅토리〉 속 거제도는 그런 불안이 존재하지 않는 테마파크처럼 그려집니다. 밝고 건강한 에너지라는 판타지를 주입하려는 연출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졌고, 저는 그 지점에서 피로감을 먼저 느꼈습니다.
청춘영화(Youth Film)라는 장르가 가진 고유한 힘은 반항과 좌절, 그리고 그 틈새에서 피어나는 날것의 생명력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안전하고 무균실 같은 공간에서 청춘을 묘사하면, 관객은 감동 대신 공허함을 먼저 느낍니다. 이 영화가 딱 그랬습니다. 웃음이 나오고 흥이 오르다가도, 어딘가 허전한 여운이 남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혜리와 박세완, 배우들이 영화를 살렸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저의 비판이 꽤 매서웠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히 짚어야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진짜였습니다. 혜리가 이렇게 임팩트 있는 역할을 이만큼 소화해낼 줄은 제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박세완을 비롯한 나머지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엉성한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라는 설정이 허술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온전히 배우들의 앙상블(Ensemble) 덕분이었습니다. 앙상블이란 개별 배우가 빛나기보다 팀 전체의 호흡이 하나의 에너지로 느껴지는 집단 연기 방식인데, 이 영화는 그 점에서만큼은 꽤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제 경우엔 첫 번째 관람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는데, 두 번째로 다시 보니 그 아쉬움보다 배우들의 에너지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서사의 빈틈이 여전히 보이면서도, 2번 이상 보게 만드는 흡입력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게 배우들에서 나온다는 게 가장 정확한 설명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빅토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완전한 실화는 아니지만 1999년 세기말 지방 고등학교 청춘들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입니다. 치어리딩 동아리라는 설정 자체는 창작이지만, 그 시대 지방 소도시 고등학생들의 문화적 열망을 담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Q. 혜리 연기력이 진짜 괜찮은가요, 아니면 화제성으로 띄워주는 건가요?
A. 제가 직접 보고 나서 편견이 깨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넘어서 캐릭터에 실질적인 임팩트를 주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화제성이 아니라 스크린 안에서 실제로 존재감이 있었습니다.
Q. 90년대를 모르는 세대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솔직히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화의 감성 코드 상당 부분이 90년대 대중음악과 복고 정서에 기대고 있어서, 그 시대를 모르는 세대에게는 향수 자극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다만 배우들의 에너지 자체는 세대와 무관하게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Q. 영화 음악(OST)은 실제 90년대 곡들인가요?
A. 네, 당시 실제로 유행했던 대중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전면 활용했습니다. 음악 자체는 그 시대를 기억하는 세대라면 반가울 만한 선곡들이며, 영화에서 가장 솔직하게 90년대를 소환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결론
〈빅토리〉는 분명히 즐거운 영화입니다. 혜리와 박세완의 앙상블은 진짜였고, 저도 2번 이상 봤습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이 끝나고 나면, 이 영화가 충분히 용감했는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90년대와 세기말이라는 배경을 빌리면서도 그 시대의 상처나 결핍을 철저히 외면한 연출은, 결국 관객의 기억에 오래 남기보다 소비되고 잊히는 방향을 선택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청춘영화를 찾고 있다면 일단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만 보기 전에 이 영화가 세기말의 어두운 결을 건드리는 작품이 아니라는 걸 알고 가면, 실망 없이 배우들의 에너지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서사보다 인물에 집중하는 관람 방식이 이 영화에는 더 잘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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